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단 편집) ===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 >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장 군인이 의사당을 점령했다. 총검이 500인회 의원들을 쫓아냈다. 저녁 7시경 원로원은 앞서 500인회가 결의한 나폴레옹의 추방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보나파르트, 시에예스, 뒤코스의 3인으로 구성되는 임시 집정정부의 조직을 공포했다. 총재정부는 폐지되었고 새 집정들에게 행정권이 위임되었다. 루시앵은 30~40명의 500인회 의원들을 긁어 모아놓고,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한 후 62명의 자코뱅파 의원을 제명하고, 12월 22일까지 6주간의 휴회를 결의했다. 밤 2시, 세 집정이 의회에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선서했다. > > >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 >----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 p.207 귀국 직후 [[시에예스]]와 손잡고 1799년 11월 9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뒤엎고 3명의 집정에 의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다. 물론 나폴레옹이 제1집정을 맡았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naparte_in_the_18_brumaire.jpg|width=100%]]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Napoleon-Bonaparte.jpg|width=100%]] || ||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당시 500인회 의원들에게 둘러싸인 시기의 그림[* 이때 나폴레옹을 호위한 저 두 명의 척탄병은 조제핀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듯 당시 의회 분위기가 나폴레옹을 때려죽이려고 할 정도로 험악해 두 명의 척탄병이 목숨을 걸고 나폴레옹을 호위했다. 다만 그림에 나온 두 명은 실제 그 척탄병이 아니라 모델이라고 한다. 좌•우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매우 똑같이 생겼는데 한 모델을 기준으로 두 명을 그렸다고 한다.] || 제1집정 시절의 나폴레옹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